2003/01-02 : 2003, 뜨는 트렌드 & 지는 트렌드 - 커뮤니케이션 : 테크놀로지 vs. 감성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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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문화의 도래, 감성과의 퓨전  
 
  1. 커뮤니케이션 : 테크놀로지 vs. 감성
 
양 영 종 | 호남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yjyang@honam.ac.kr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좥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좦에서 전기·전자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체의 지각시스템과 감각력의 변화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맥루한이 이 책을 출판한 것은 60년대 중반이고, 6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야 제한된 일반 대중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컴퓨터 시대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전기·전자보다 더욱 큰 테크놀로지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컴퓨터는 60~70년대와는 달리 80년대 이후부터 급속도로 발전하여 하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컴퓨터의 출현은 테크닉의 발달에 한 획을 그으면서 이전에는 관리하기 어려웠던 작업을 거의 순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전기·전자 시대에 구축되었던 조직 구성을 압축하여 훨씬 큰 용량과 속도로 진행될 수 있도록 처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컴퓨터의 출현은 신경 계통을 연장하는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좌
뇌의 기능을 증폭시켜주는 도구의 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언어력·분석력·논리력을 관장하는 좌뇌와, 창의성, 특히 공간적인 관계나 음악 등과 같은 예술적 능력을 담당하는 우뇌가 있다. 그런데 생리학자인 앙리 라보리(Henri Laborit)는 한쪽 뇌가 활발히 활동하게 되면 다른 쪽의 뇌의 활동은 제약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컴퓨터가 발달하면 할수록 사용되는 언어체계의 제한, 그리고 언어에 기초를 둔 분석력과 논리력의 확장에 따라 엄격하고 냉정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반면에, 기계시대와는 다른 유사한 맥락의 감성 선호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에 2003년에는 논리와 형식을 중시하는 하드웨어 형태와, 감성과 내용을 중시하는 소프트웨어 형태가 상호 융합되어 혼재하는 환경이 예상된다.
 
 
고정 틀 벗어난 테크노문화의 범세계적 부상
  새롭게 맞이한 한 해, 우리는 지금 기술 공학에 의해서 새로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소박하고 성급한 희망을 갖는 한편,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허무주의적 전망이 엇갈리는 기로에 서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시공간 압축기술’ ‘사이버네틱스’* 등을 핵으로 삼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과학의 비약적 발달이 우리 문화의 성격을 크게 변모시키고 있다. 따라서 테크놀로지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또는 방법으로, 목표의 효율이 바로 테크놀로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테크노문화가 점차 증대될 것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크노문화는 테크놀로지 자체의 구성과 사용에서 나타나는 문화적인 관행과 제도 그리고 용법
을 뜻하며, 예술문화·종교문화·대중문화 등과 같이 전체 문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하위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학문화·과학기술문명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나 단순 기계복제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종의 사이버네틱스 기술 복제, 고도 과학기술문화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문화가 한정되고 고정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축 위에서 사고하고 행위하는 것이었다면, 테크노문화는 고정된 좌표축과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서구 문화 담론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테크노문화는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다. 그러나 정보통신 혁명이라는 세계적인 문화 변동을 감안할 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덧 테크노문화가 우리 곳곳에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정보화·영상문화에 관한 소개와 광고가 언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테크노문화가 날로 확산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실례로 볼 수 있다. 광고에서 활용하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에서 받게 되는 느낌은 사실 놀라운 사실 재현 능력과 무궁무진한 표현 가능성에 대한 충격이다. 이는 다른 매체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컴퓨터 그래픽만의 독점적인 표현 능력에서 오는 것인데, 그 경탄할 만한 시각적 효과는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사실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는 무관한 초현실이다.
따라서 테크노문화에서는 여러 문화들의 시간적 차이(전통과 현대)와 공간적 차이(서구문화와 동양문화)가 연결, 충돌하며 압축됨으로써 문화적 복합화 현상을 야기하게 된다. 오늘날 다문화주의라는 문제가 여러 지역에서 큰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도 이런 거시적 변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상정보 매체를 통해 지역성이 탈피되는 현상, 즉 인공위성을 타고 안방으로 들어오고 있는 일본의 NHK, 홍콩의 스타TV 전파가 우리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서 다문화주의적 성격을 띌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세계는 점차 거대 도시화되어 가고 있으며 상호 의존성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범세계적인 원격 통신망의 발달, 해외여행의 성행은 유럽과 북미, 환태평양 지역을 한국의 어느 한 지역으로 느껴지게끔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동경·파리·뉴욕의 음악과 음식, 패션은 우리의 생활 양식을 지배할 것이다. 멕시코 음식을 먹고 밀러 맥주를 마시며, 이탈리아 가구로 아파트 내부를 꾸미고 벤츠를 타고 여행을 하게 한다. 이른바 ‘지구의 문화’가 ‘하나의 문화’로 되는 것이다. 또한 경제·정치의 세계화와 함께 문화의 세계화도 주목해야 할 경향이다. 뉴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화·TV 프로그램·광고·대중음악·전산 및 통신 프로그램 역시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게 될 것인데, 이러한 대중문화의 생산·분배·소비 체제는 선진국에의 문화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자기 표현과 창의성의 부활
 
우리 생활을 지배할 테크노문화에 대한 전망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다. 낙관론적 전망으로는 ‘1)자기 표현과 창의성의 부활, 2)일상생활의 편의성 향상, 3)생산성의 향상, 4)지식의 확대, 5)개개인의 잠재력 실현 증대, 6)가상공동체에 의한 가치의 일부 회복, 7)지속적인 성장 속에서 풍요로운 문화 형성, 8)세계적인 인식, 9)소외감을 없앨 수 있는 작업환경 조성, 10)지식과 정보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관론적 전망은 ‘1)지나치게 기술에 의존하는 데서 비롯되는 비인간화, 2)해커와 테러리스트의 공격, 3)갑자기 발생하게 될지 모르는 소프트웨어의 결점, 4)전자기술에 바탕을 둔 테크노문화에의 지나친 의존, 5)지적 재산권이 존중되지 않는 경제적 무질서, 6)매체중독에 의한 사회의 비이성화와 문명화, 7)정보의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사회불평등 심화’ 등과 같은 전망이다. 또한 테크노문화를 도래하게 한 과학기술과 정보혁명은 우리의 경제·문화·환경을 하나의 울타리로 통합시킨, 이른바 ‘지구촌 시대’로의 접근을 더욱 촉진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이론이 거의 없다.
 
 
‘Homo Digitalicus’의 등장 vs. 본성의 추구
우리사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우리 안방에 큰 영향을 미칠 TV가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뀐다면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이 예상된다. 우선 종래의 아날로그 시대에는 각각의 감각 능력들을 분리해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아날로그화한 모노미디어는 주로 ‘보는 신문 따로, 듣는 라디오 따로, 듣게도 하고 보게도 하는 텔레비전 따로’ 식으로서, ‘감각 능력의 따로 국밥’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시대가 ‘느낌·감각·감성의 분단’이었다면, 새로 맞는 디지털 시대는 ‘느낌·감각·감성의 융합’이다. 말 그대로 ‘오감 융합의 시대’로서, 아날로그화한 모노미디어의 환경 속에서 분절되었던 사람들의 감각이 다시 융합, 확장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디지털화한 멀티미디어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디지털화한 멀티미디어는 더 이상 테크니컬한 수준의 기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환경 속에서 융합된 살아있는 객체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 처한 인간에게 새롭게 붙여질 학명은 아마 ‘호모 디지털리쿠스(Homo Digitalicus: 디지털화한 사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화한 사람은 단편 일률적인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승화되어 보다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고자 할 것이다. 디지털이 감성을 융합케 하는 매개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디지털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몸 안에서만 가능했던 오감 융합을 전체에 걸쳐 재생하며 전달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호모 디지털리쿠스’는 테크놀로지에 예속된 사람들이 아니라 감성을 통해 환경 전체와 교감을 이루는 신인류로 자리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최대의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사랑’이며, 기성세대가 바라는 최대의 욕구는 ‘따뜻한 정’일 것이다. 이것은 더욱 각박해진 기계적 사회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독을 탈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의 풍요로움, 생활의 편리함과는 반대로 점차로 메말라가는 사회에서 인정과 온정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더욱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본질에 다가가고자 , 자연에 가까워지고자 애쓸 테니까.

시대의 흐름은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꿔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테크놀로지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감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인간의 본성인 감성으로 돌아가는 회귀성을 보이는 것이다.
2003년, 우리사회에서는 감성의 가치가 점차로 중시되며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테크노문화 또한 더욱 확산될 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테크놀로지든 감성이든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 둘이 융합, 조화하는 퓨전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점이다.

 
 
*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系)에서 제어와 통신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1947년 미국 수학자 N.위너를 중심으로 하는 과학자의 그룹을 사이버네틱스라고 이름지었는데, 어원은 키잡이[舵手]를 뜻하는 그리스어 kybernetes이다.
위너의 정의에 따르면 사이버네틱스란 “어떤 체계에 포함되는 두 종류의 변량이 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가 직접 제어할 수 없는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이때 제어할 수 없는 변량의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값을 바탕으로 하여 제어할 수 있는 변량의 값을 적당히 정하여, 이 체계를 가장 바람직스러운 상태로 도달시키는 마법을 부여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학문이라 하였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