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8 : Global Report - 유럽 / 영국의 자율심의제도와 적용 사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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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비티와 심의,
그 아슬아슬하지만 명료한 경계
 
 
 영국 - 영국의 자율심의제도와 적용 사례
 
이 대 의 | University of Lancaster 박사과정
daram1@hotmail.com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고생 끝에 만든 광고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심의에 걸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그 아쉬움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요즘처럼 광고물의 홍수로 인해 고통 받는(?) 소비자들의 입장을 고려해본다면, 작금의 광고들은 너무 자극적이고 공격적일 때가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도 그런 경험을 종종 한다. 영국에서 길을 지나다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섬뜩한 빌보드 광고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 정신적 테러를 당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고가 그토록 자극적이어야만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고충과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서구의 광고’ 하면, 그들의 일상문화와 견주어 뭔가 자극적이며 새롭고 특이한 광고들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는다. 그것은 물론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광고산업이라는 큰 틀을 염두에 두어 자신들만의 규약을 만들고 자율적인 심의를 통해 서로를 지켜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네들의 광고심의 양태는 어떠한가? 유럽에서 자율심의제가 가장 오래 전부터 시행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심의기구 ‘ASA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의 활동상을 통해 그 실태를 알아본다.
 
TV와 라디오를 제외한 모든 매체광고 사후 심의
 
지난 1962년에 설립된 ASA는 TV와 라디오 등 방송매체를 제외한 모든 매체의 광고들에 대한 사후(post-publication) 자율심의를 수행하고 있다. TV 및 라디오 광고의 경우에는 ITC(Independent Television Commission)와 RA(Radio Authority)라는 기구에서 각각 사전심의를 하고 있다. 즉 ASA는 잡지·신문·포스터·전단물, 그리고 인터넷·이메일·컴퓨터 게임 등 뉴미디어를 포함한 각종 매체들의 광고를 심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체는 40년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코드를 규정하고 있어 광고주들이 새로운 광고를 런칭하기 전에 ASA 코드집을 통해 그 동안의 사례 및 규약들을 살펴보면서 런칭할 광고가 그에 적합한지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ASA의 코드집에서는 ‘광고는 합법적(legal)이며 품위와 예의(decent)에 맞고, 정직해야(honest) 하며 믿을 수 있어야(truthful) 하고, 또한 공정한 경쟁(fair competition)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코드들은 지금과 같이 새로운 미디어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광고회사들이 법규를 교묘하게 피하는 수법을 쓰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계속 새롭게 업데이트하면서 현실에 맞도록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광고에 관한 불만사항과 관련, ASA는 개인 소비자들의 불만사항 접수를 기반으로 조사에 착수하는데, 2002년도 ASA보고서에 따르면 접수된 불만사항의 92%가 개인 소비자들에 의한 것이었고 단 8%만이 업계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물론 모니터 요원(spot checks team)들 또한 1주일에 1,000여 건이 넘는 광고들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12명의 심의위원 중 4명만이 광고업계 관련 종사자이며, 나머지 8명은 광고업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광고인의 시각과 비광고인의 시각이 잘 조화되어 공정한 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년에 평균 1만 4,000여 건의 불만사항이 접수되는데, 그 중 1,500여 건의 광고에 대해 수정 또는 집행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만약 어떤 광고가 자율심의 규약을 어겼다면 먼저 ASA측에서 광고주에게 수정이나 광고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데, 무려 90% 이상의 광고주들이 그러한 권고와 수정, 보류 조치에 동의하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도 신속해, 2001년 ASA 자체 분석 자료에 따르면 평균 21일 내에 수정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최종 권고에 응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광고협회 등을 통해 더 이상 광고주가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그렇다면 이런 자율심의가 어떤 점에서 유익하다고 평가 받고 있을까?
첫째, 자율심의라는 말 그대로 심의 기준이 매우 탄력적일 수 있다. 따라서 광고주는 자신들의 광고가 옳다는 적합한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면 되는데, 적합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광고는 자체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둘째, 광고 기법이 다양화하고 뉴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등 급변하는 광고 현실에서 정부 주도하의 법령화된 규약은 그러한 시대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므로 자율심의가 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저렴한 가격으로 심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ASA의 경우 광고 비용의 0.1%만 심의 비용으로 지출하면 된다.
 
엄중한 만큼 융통성도 돋보이는 심의 운영
 
ASA 규정에는 ‘광고는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정보로 소비자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된 사례를 보자. <광고 2>는 ‘라이비나(Ribena)’라고 하는 유명한 희석음료(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물에 타서 희석해 마시는 주스 브랜드)광고이다. 칫솔 위에 라이비나가 올려져 있어 라이비나를 마시면 치아에 좋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ASA는 라이비나가 치아에 좋다는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이 광고만으로는 잘못된 소비자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다른 사례 몇 가지를 보자. 영국의 패션 브랜드인 ‘FCUK(French Connection United Kingdom)’는 항상 아슬아슬한 광고 문구들로 유명하다. 그 브랜드 이름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FUCK’을 연상시키는 브랜드 이름은 예전 브랜드 초창기부터 이슈가 되었다. 광고 역시 브랜드 이름을 교묘하게 섹스와 비속어로 연결시킨 것이 눈에 뜨는데<광고 3>, 이 광고 문구를 재해석하자면 ‘Fc+U+Kinky +Bugger’쯤 될까? 여기서 FC는 브랜드 이름인 French Connection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Kinky와 Bugger는 우리나라 말로 각각 ‘변태’와 ‘싫은 녀석’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광고에 대해 ASA에는 140건의 불만이 접수되었는데, 어린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으며 공격적이라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Kinky와 Bugger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각기 따로 쓰이면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는 비속어가 되지는 않지만, 광고에서처럼 서로 연결되었을 때에는 공격적인 비속어로 변하기 때문에 ASA에서는 이 광고를 수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한편 ASA 규정 제5.1항에는 ‘광고물들은 인종·종교·성별·성과 관련하여 심각하거나 보편적인 위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와 관련, 유의해 볼 만한 사례가 있다. <광고 4>는 여성의 몸매를 상품화한 전형적인 광고인데, 이 광고가 포스터로 런칭되었을 때에는 무려 1,000여 건의 불만사항이 제기된 반면, 여성지에 게재되었을 때에는 단 3건에 그쳤다. 그리고 ASA는 똑같은 광고물인데도 불구하고 옥외포스터는 중단할 것을 권고하고, 여성지에 나온 광고는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즉 매체에 따라 광고를 보는 대상이 다르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해석을 내린 것으로, 법규의 문구에만 얽매이지 않고 미디어 특성을 신중히 고려한 노력이 엿보이는 사례이다.
영국의 공익광고들은 때때로 아주 자극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아마도 타깃들에게 자극적인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강력한 메시지 전달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 5>를 보면 어린 아이가 음침하고 지저분한 바닥에 앉아 주사기를 들고 있는 섬뜩한 장면이 나온다. ASA에는 이 광고에 대한 30건의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ASA는 오랜 시간의 고민 끝에 이 광고를 심의, 통과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공익광고는 약물중독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데, 이미지를 보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독자 스스로 충분히 이 광고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약물 중독 폐해의 심각성을 전달하려는 공익광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결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광고 6>은 이와 반대의 경우이다. 역시 공익광고 성격이 강한, 동물보호를 호소하는 광고인데, 정말 보기만 해도 섬뜩하리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런데 이 광고의 경우 단지 4건의 문제제기밖에 없었지만, ASA는 비록 사람들이 이 광고를 통해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어린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상황에 따른 융통성 있는 결정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위의 사례들은 크리에이티브한 광고가 그 광고 성격에 맞게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해석됨으로써 심의라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 경우들이라고 하겠다.
 
 

사실 광고를 법적으로 규제하느냐 자율적으로 규제하느냐의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이러한 광고심의 문제가 관련 잡지 및 신문에 흔히 오르내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심의 규정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고, 그만큼 더 새로운 광고기법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예전의 잣대만으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시대 흐름을 외면한 처사라는 것이다. 이에 영국 ASA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이러한 것은 무조건 안 돼”라는 식의 규제가 아닌, 미디어별 특성, 마케팅 외부환경(marketing environments)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심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아울러 자율심의제 같이 업계 스스로가 자정의 칼날을 대는 것은 광고 관계자라면 누구나 환영할 일이지만, 사회 공익을 위해서 광고관계자 스스로가 그 규약을 지키며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