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8 : Culture Club - 추(醜)의 반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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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추, 선과 악… 그 이분법적 틀의 유효기간이 끝나다
 
 
 추(醜)의 반란
 
양 성 희 |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cooly@munhwa.co.kr
 
요즘 TV에서는 예전 같으면 도저히 스타덤에 올랐을 것 같지 않은 ‘안 생긴 개성파’ 연예인들이 눈에 띄게 많다. MBC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로 주목받은 양동근, 영화 <품행제로>의 개성파 류승범, 가수 겸 배우로 팔방미인의 재능을 펼쳐보이는 임창정 등이 대표적이다. 여자 연예인으로는 공효진·배두나를 꼽을 수 있는데, 두 사람은 절대 못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그간 젊은 여성 연예인에게 요구되었던 인형 같은 공주풍 외모와는 거리감이 있다. 코미디언쪽으로 가면 아예 ‘안 생긴’ 외모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이들도 많지만 그것은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수성 때문이라 치고(이름도 우스운 웃기게 생긴 코미디언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디오형 가수’들이 장악해버린 가요계에서도 푸짐하거나 개성적인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을 내세운 ‘빅마마’ ‘버블시스터즈’ 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Anti-Hero·삐딱이 정서가 대중정서의 핵으로 자리
 
스타란 한 시대, 그 사회의 욕망의 총체라는 점에서 스타의 외모는 그 시대가 원하는 외형적 조건의 구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기를 끄는 스타 중에, 그것도 ‘특이한’ 외모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개성적인 외모의 연예인이 많다는 것은 그러한 외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증거다.
탤런트 공효진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인상적이다. “저는 예쁘지 않잖아요. 예뻐서 사랑 받는 연예인은 시대를 초월해 언제든지 사랑 받겠지만, 저는 저 같은 외모에 대한 사회적·시대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존재, 인기가 사회적·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는 영특한 말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공효진이 절대로 못생긴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더구나 그녀의 긴 팔과 늘씬한 몸매, 완벽한 프로포션을 두고 안 생겼다고 말하는 건 대단한 실례다), 그녀의 인기는 개성이 중시되고 왕자·공주의 정형적 외모에서 벗어난 일탈적 이미지가 인기를 끄는 시대적 분위기의 산물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양동근의 경우는 더욱 극단적인 예다. 확실히 ‘꽃미남’은 아닌 데다가, 그가 맡은 역할(그를 스타덤에 확실히 올린 <네 멋대로 해라>를 포함해) 대부분이 주변부 낙오자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동근의 인기는 요즘 우리 사회 대중정서의 핵심이 바로 ‘안티 히어로(반영웅) 정서’ ‘삐딱이 비주류 정서’ ‘아웃사이더 정서’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범생이’라는 말이 더 이상 칭찬이 아니라 비아냥이듯, 이제 대중정서는 미끈하게 잘 다듬어진 주류적인 것을 정형적인 것, 상투적인 것, 쓸데없이 권위적인 것, 매력적이지 못한 것으로 일단 거부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90년대 후반 이후 정치적으로 탈권위화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의 주된 특성이기도 하다. 기존 질서, 기존 가치에 부합하는 주류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단 딴죽을 걸고 거부하는 삐딱이 비주류정서가 반영웅 정서, 극단적으로는 엽기정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지금 방영중인 TV드라마들만 봐도 그렇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BC의 <옥탑방 고양이>에는 도박을 하느라 사채를 끌어다 쓰고 여자 친구 집에 얹혀 사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껄렁껄렁 고시생 김래원과,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부자도 아닌 정다빈 커플이 주인공이다. 숨막히게 완벽한 외모와 조건으로 동화 같은 사랑을 나누는 로맨스물의 전형적인 주인공 왕자·공주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SBS의 <선녀와 사기꾼>의 주인공은 여러 개의 이름을 쓰면서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기꾼 안재욱이 주인공이다.
이처럼 ‘삐딱선’을 타는 주인공에 대한 선호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TV보다 영화에서 더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가령 조폭영화 붐도 이 같은 반영웅·비주류· 아웃사이더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반영웅 정서의 부각은 앞서 지적한대로 90년대 이후 우리사회 탈권위화의 산물이다. 기득권을 가진 기성의 모든 가치들이 90년대 신세대 문화의 득세, 사회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전면 부정되면서 주류·기성의 것들이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매력을 상실해갔다. 동시에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란 서구사회를 오랫동안 밑받침해왔던 이성과 지성 중심이라는 이분법적 체계의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문화적·시대적 흐름을 뜻한다. 그런데 모더니즘이 인쇄·문자 시대의 산물이라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영상 디지털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가르는 주요한 기준의 하나는 바로 ‘이분법의 붕괴’다. 하나의 중심, 하나의 주체에 나와 너(敵), 선과 악, 미와 추, 정상과 비정상, 남과 여의 이분법에 기초한 모더니즘과 달리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에서는 이분법적 틀이 무너진다.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미와 추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남녀의 성차가 좁혀지고 모호해지며, 서로 다른 문화 영역들이 구분없이 어우러지는 크로스오버가 문화의 큰 흐름으로 부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나 모더니즘적 질서 안에서 기존의 이분법적 체계는 불평등 권력 관계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의 이분법적 관계에서는 앞에 있는 것들이 뒤쪽에 있는 것들보다 항상 우월하게 평가돼 왔다는 것이다. 미는 추보다, 남성은 여성보다, 선은 악보다, 정상은 비정상보다, 백인은 유색인종보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보다, 도시는 지방보다, 표준어는 사투리보다, 1세계는 3세계보다 항상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이 깨지면서 미와 추, 정상과 비정상, 남과 여, 백인과 유색인종, 도시와 지방은 불평등 관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영웅 정서의 유행, 나아가 추의 반란은 이런 문화사적·시대적 흐름의 산물이다.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문화적·정치적 불평등 권력 관계를 깨는 움직임이기도 하며, 탈권위의 산물이기도 하다. 양동근·류승범 같은 ‘안 생긴’ 배우들이 꽃미남 배우들의 대열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나(예전에도 이런 개성파 배우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늘 감초역할이나 조연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당당한 주연이다), 기성의 눈으로는 전혀 아름답게 생각되지 않고, 심지어 지저분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엽기적 캐릭터의 엽기 행각들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호응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추의 반란, 반영웅의 유행은 문화적 다양화와 문화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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