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9-10 : production sketch - LG 화재 기업 PR-CF<악어편> - 악소리났던 촬영, 와! 소리나는 보험
2010. 8. 3.Z프로덕션의 L 조감독이 깨우는 소리에 부시시 눈을 떴다. KAL 017편 점보비행기는 여전히 암흑 속에서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듯했다. 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하늘에 떠있다는 사실에, 속으로는 무지 무서우면서도 나름대로는 표정관리를 해가며 테이블에 놓인 컵라면에 젓가락을 담궜다. 국물까지 들이키고 나니, 공짜 꼬냑에 엉망이 된 속이 한결 편해졌다.
역시 컵라면은 인류역사상 두 번째로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감탄하며(물론 1위는 그냥 라면이다), 자칭 ‘수석조감독’ 이라고 우기는 L 씨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멀뚱멀뚱 눈뜨고 있으면 다시 무서워 질까봐, K 감독에게 는 예의 그 웃음 띤 얼굴로 다시 표정관리해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촬영 잘하고 오라며 당부하던 국장님, 광고주, 기획팀 박성용 대리... 그들의 얼굴과 날 기다리며 우글거리고 있을 밀림의 온갖 독충들과 방울뱀, 악어떼의 모습이 뒤섞이며 이제 기억은 브리프를 받아들던 두 달 전으로 돌아간다.
‘디지털’로 끌어올려라
11개의 손해보험사 중에서 LG화재의 최초 인지도가 4위 ?! 참으로 예상외의 정보였다. 비록 그룹계열사에서 독립되었고, 삼성은 헬리콥터를 내세워 ‘찾아가는 서비스’를 외치고 있었으며, 현대해상은 ‘박찬호’라는 빅카드를 쓰고 있었다고는 하나 인지도가 3위도 아닌 4위? 더욱이 major 3 (삼성, 현대, 동부)와의 격차 또한 예상 밖의 수치였다.
비상이 걸렸다.
그로부터 두 달, 제작 팀은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문제의 핵을 향해 접근해갔다. 우리가 찾아낸 key word는 ‘digital’이었다. digital은 LG가 선점하고 있었던 모토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빼앗기다시피 한 상태였다.
LG화재가 그룹에서 분리된 상태이긴 했지만 ‘LG’라는 기업명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번 기회를 통해 되찾아온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충분했다.
그런데 ‘디지털’이라는 이 어려운 단어를 소비자에게 어떤 말로 전하느냐 하는 것도 문제였다. 기실, 2000년 현재 우리나라 광고계에서 디지털의 실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광고는 전무했다. 그만큼 소비자언어로 풀어내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단어이기도 했으며, 또한 이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거론마저도 혼란스러운 지경이었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면서...
제작팀은 디지털의 실체를 ‘빠르다’ 로 규정 지었다.
이는 수많은 이동통신광고에서의 ‘빠르다’와는 많은 차이를 내재하고 있는 규정이며, 이 컨셉트의 back-up source는 바로 LG화재 서비스 중에 있었다.
신규 자동차보험 가입자와 여행자보험의 경우 가입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LG화재만의 차별화된 서비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보험회사의 속성상 영업사원이 보험가입 유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인터넷을 통한 가입만을 강조하기엔 영업부서의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우리 컨셉트에 맞는 약 8편의 스토리보드를 제작, LG화재 영업사원과 본사 직원, 임원진, 그리고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4번에 걸친 FGI를 실시했다.
마침내 디지털이라는 딱딱한 언어를 편하고 쉽게 소비자코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유머러스한 광고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 LG화재 기업PR은 두 달여의 우여곡절끝에 루이지애나행 <악어편>으로 낙점되었다.
덜컹!
“이눔의 쇳덩어리가 그냥 지 맘대로 떨어져 버리는 거 아냐 ?”
가슴이 콩당콩당 뛰면서 무서움 반 신경질 반에 투덜이 스머프처럼 마냥 툴툴거리며 LA공항을 빠져 나왔다. 영화 <도망자2>에서 웨슬리 스나입스가 숨어 들었던 밀림의 촬영지, 온갖 독충과 방울뱀이 득실거린다는 미시시피강 하류를 향해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도착했다.
밀림 속의 긴 사투, 15초의 여운
재즈의 본산지라기에 은근한 기대를 갖고 내린 뉴올리언즈공항은 낭만과 선율 대신 섭씨40도를 오르내리는 고온에 이글거리는 태양, 그리고 끈적거림의 한계를 보여주는 습기만 가득했다.
LA에서 공수하기로 했던 조련악어와 사육사 대신 로봇악어 제작비를 더 투입한 게 잘한걸 까,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로케이션 헌팅에 나섰다.
촬영중 안전을 위해 촬영지는 천연의 밀림대신 개인 악어농장을 빌리기로 했다. 늪지에서 올라오는 가스냄새에 코를 막으며 이틀에 걸친 헌팅을 끝내자 서울에서 본팀이 도착했다.
그리고 3일간의 촬영… 앞에서 언급했던 갖은 악조건에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벌레들, 검정색메뚜기,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방울뱀.
한나절 촬영 후면 모두들 녹초가 되어 버렸다. 촬영 첫날은 기우뚱거리는 배를 고정시키느라 좋은 광선을 다 놓쳐버려 감독님과 얼굴을 마주보며 탄식했다.
게다가 둘째날은 로봇악어 오퍼레이터들의 실수로 악어 속의 전기선이 합선, 발을 동동 구르며 수리하는 데 2시간을 허비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난 내 수명이 최소한 1년은 줄었다고 확신한다.
촬영 내내 스태프들 중 가장 인기 있었던 친구는 누가 뭐래도 ‘현지 PM’이었던 나이 서른 두 살의 노처녀였다. 이름은 가물거려서 생각나지도 않지만, 어쨌든 달려드는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렸을 적 치고 자던 모기장을 아예 옷으로 만들어서 입고 다녔던 거다.
작고 뚱뚱한 체구에 모기장을 입고, 그 악조건속에서도 꿋꿋하게 일하는 모습에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 친구에겐 ‘모기장’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지만.
연일 강행되는 촬영 속에서도 모든 스태프들에게 친절과 그 특유의 유머로, 할 수 있는 만큼의 호의를 다 보여주었고(대개는 감독이나 광고주에게만 잘보이려 하게 마련이다), 촬영에 임하면 감독의 요구를 넘어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윽고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후 편집에 들어갔다.
예의 스토리위주의 광고가 그러하듯이, 스토리 전개상의 감정전달이나 컨셉트 고지에 있어 우리 작품 역시 시간의 한계에 부딪혔고 또한 극복하지 못했으며 on-air 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나를 안타깝게 할 뿐이다..
광고주 시사도 무사히 마쳤고 사내에서의 반응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판단은 늘 소비자의 몫으로 남는 것이 광고 아니던가?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악어광고’가 아무쪼록 소비자의 따뜻한 반응에 힘입어 ‘악’ 소리나는 광고로 기억되어 2차, 3차 광고로 유지, 전개, 롱 런하는 캠페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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