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12 : Culture Club - '몸과 몸의 대결에서 이겼느냐?'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몸과 몸의 대결에서 이겼느냐?’
 
 
 boom!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
 
정 성 욱 | 영상사업팀
swchung@lgad.lg.co.kr
#1. 피 흘리다
 
   


 
이미 경기는 2라운드. 주먹과 발, 그리고 꺾기와 조르기가 난했던 1라운드 5분간의 흔적이 링 위의 두 남자의 얼굴과 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머리를 기른 쪽은 인터넷 격투동호회가 낳은 22세의 스타. 처음 링에 오를 때는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있었지만 몇 분간의 공방 끝에 결국 ‘락커정신’이라는 자신의 별명에 어울리는 산발로 변해버렸다. 그 반대편은 ‘불사조’란 별명의 36세의 남자. 예전 어두운 전력을 극복하고 얻은 별명의 증거가 화상자욱으로 온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이제 폭력배가 아니라 한 권투도장의 관장으로, 긍지 높은 격투사로 링 위에 서 있다.
긴장 상태를 깨고 락커정신의 발차기가 허공을 가른다. 순간 불사조는 익숙한 위빙으로 스치듯 발차기를 피하며 빈틈을 뚫고 접근해 락커정신의 안면과 바디에 날카로운 펀치를 날린다. 사람의 몸은 정직하게도 맞은 만큼 부풀어오른다. 그러나 펀치를 날린 불사조도 멀쩡하진 않다. 그의 오른쪽 눈 밑은 전 라운드에서 상대가 날린 펀치와 킥에 의해 이미 3cm가량 찢어져 있었다. 그 상처에서 넘치듯 흐르는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이미 다른 선수들의 핏자국으로 가득한 캔버스에 획과 점을 더하고 있다.’
2003년 10월 11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모 이종격투기대회. ‘락커정신’ 김형균 선수와 ‘불사조’ 박현성 선수의 경기. 결국 지나친 출혈에 의한 닥터 스톱으로 김 선수의 2라운드 TKO승으로 끝나고 만다.
 

#2. 붐(boom) 일다

 
   
 
모든 것은 한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이 일본과 미국의 ‘특이한’ 경기를 수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실전격투’라는 태그라인을 달고 방영되기 시작한 이 경기들의 시청률은 폭발적인 수치를 기록했고,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트래픽이 급증했다.
심야에 방영되는 경기를 보기 위해 잠을 설쳤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수가 1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더니 4월에는 외국 경기의 TV방영을 넘어서 국내에서도 수 천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소위 메이저급 대회가 개최되었고, 2003년 10월 현재 크고 작은 10여 회의 대회가 치러지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단순한 관람을 넘어서서 직접 수련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모임들이 활성화되고, 관련 머천다이징 사업도 예전에 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붐’이다. 스포츠지와 스포츠 전문 케이블이라는 특화 미디어는 국내 대회의 스폰서나 경기방영 같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 붐을 주도하고 있고, 공중파 방송들이나 주요 일간지도 점점 그 흐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공중파 방송은 케이블처럼 적극적인 형태가 아닌 ‘휴먼 다큐멘터리’나 ‘폭로형 르포타주’의 소재로 다루는 데에 한정되어 있고 주요 일간지 역시 논객들의 입을 빌어 ‘잠재된 폭력성’, ‘사회의 부조리’, ‘자극에의 추구’ 같은 방관적 관찰자의 입장을 보이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3. 뜻 풀어보다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라는 말에는 ‘서로 다른 무술간의 겨룸’이라는 뉘앙스도 있어 일견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태권도와 유도가 붙으면?’, ‘쿵후와 레슬링이 엉키면?’ 등, 결코 대결할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의 대결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술간의 대결’이란, 이종격투의 ‘외형’은 될 수 있어도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각각의 투기 스포츠에는 공격 방법을 제한하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지만, 이종격투기는 각각의 금지사항을 최소화시켜 서로 다른 종류의 격투기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한다. 제한이 적어지니 권투선수도 킥을 하고 ,유도선수도 펀치를 날린다. 그래서 사실 이종격투기는 다른 무술간의 대결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체계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격투 체계요, 또 하나의 투기 스포츠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종격투기란 ‘종합무술(MMA; Mixed Martial Arts)’을 습득한 개개인들간의 체력과 기량을 겨루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한 시대의 음악계를 주름잡다가 이제는 영화와 요리로 넘어가 버린 ‘퓨전’이라는 사조가 바야흐로 스포츠에 도입된 셈이다.
결국 서로 부딪히는 것은 ‘인간’이다. 두 사람의 인생이 부딪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자신과 도장, 심지어는 가족의 명예를 걸고 싸운다. 복수와 재기, 영광과 몰락도 있다. 신인은 꿈을 꾸고 노장은 전설을 만들며, 수많은 불패신화가 명멸한다. 이런 드라마의 진행은 너무나 명확한 질문인 ‘몸과 몸의 대결에서 이겼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그런데 이러한 이종격투기의 순정성(純正性)과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가 많은 팬들을 열광케 하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붐이라고는 하지만 이종격투기는 아직은 호기심 유발의 이슈를 넘지 못하는 듯하다. 스포츠라기보다는 폭력적인 구경거리 정도로 간주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피 흘리며 싸우다 보니 야만성이나 폭력성 같은 전근대성의 혐의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4. 사회현상이 아닌 문화현상으로서의 이종격투기
 
   


 
고대 올림피아드에 ‘팡크라티온’이라는 종목이 있었다. ‘권투와 레슬링을 혼합시킨 형태’의 격투라고 알려진, 그야말로 고대의 이종격투기였던 이 시합은, 그러나 올림픽을 부활시킨 근대주의자들에 의해 배척해야 할 야만성, 즉 전근대성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합리’의 규범과 방법론이 첨탑처럼 세워지던 모더니즘의 시대는 아무래도 이런 종목을 스포츠로 인정하기엔 너무 얌전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하자 문화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장르의 붕괴 같은 근원의 탐구를 통한 원칙의 붕괴와 재수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거의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문화판을 휘저어온 탈근대의 조류가 이제 격투 스포츠들로 하여금 자신의 원형을 뒤돌아보도록 하는 것이 이종격투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사적 논쟁을 차치하고도, 이종격투기의 출현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관람문화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야만적이다, 폭력적이다 하는 선입관을 버리고 가까운 격투 이벤트를 찾아가 관람해 보자. 몸과 몸의 격렬한 충돌 속에서, 그리고 경기 후 상대를 격려하며 포옹하는 선수들의 마음 속에서 이종격투기 역시 오페라나 연극 혹은 영화처럼 세상을 반영하여 우리 각자의 삶을 반추해 보게 하는 훌륭한 관람문화라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