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4/09-10 : 광고세상 보기 - 간접광고를 말한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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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세상보기 - 간접광고를 말한다
 
  양성화 전제로 해법 찾을 때  
이 상 복 | <중앙일보>기자
jizhe@joongang.co.kr
 
지난 8월 14일,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때 아닌 사과문을 읽어야 했다. 지나친 간접광고로 시청자들에게 피해를 준 점을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위원회가 최근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린 데 따른 조치였다. 간접광고가 문제되더라도 가벼운 제재로 일관해 왔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방송사로서는 시청률 1위를 질주 중인 드라마 앞에 이런 자막을 끼워 넣기가 싫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흔히 PPL(Product Placement)로 불리는 간접광고. 8월 15일 종영한 <파리의 연인>의 폭발적 인기는 그만큼이나 간접광고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즉 근원적으로 간접광고를 막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양성화를 검토할 때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인 쪽이지만, 때마침 불어온 일본 등지에서의 <겨울연가> 신드롬은 오히려 간접광고를 해외전략 차원에서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에도 힘을 불어넣게 되었다.

간접광고, 더 세지고 더 적극적으로
“여기(휴대전화에) 노래가 몇 곡 들어가는지 기억해? 한곡에 4분, 마흔 곡이면 160분이야.” “영화, 그 이상의 감동,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인 우리 CSV에서는….”
<파리의 연인>에 나왔던 대사의 일부다. 그러한 간접광고의 예는 수없이 많다. 극중 박신양의 회사 GD자동차에서 GM 대우를 떠올리지 못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GD 로고는 한 회에 무려 40번 가까이 모습을 드러낸 적도 있다. 김정은의 CSV 또한 마찬가지. 제작사에 따르면 원래 한 정수기 회사가 CGV의 두 배 가격으로 협찬을 제의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은을 ‘정수기 회사 직원’으로 설정할 경우 극을 끌어가기가 어려워 양심적(?)으로 거절했다는 것. 제작사 역시 할 말이 있을 테지만, 어쨌든 ‘과다 광고’ 논란만큼은 비껴가기 어려울 것 같다.
MBC <황태자의 첫사랑> 역시 일찌감치 간접광고 시비에 휩쓸렸고, 이 프로그램 또한 방송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리조트 회사 클럽 메드의 제작지원을 받은 이 드라마는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리조트 관광상품을 반복해 보여줘 화를 자초했다.
전파의 공공성 때문에 이렇듯 방송이 우선적으로 문제가 됐지만, 영화는 더욱 노골적이다. 최근 한 신세대 스타가 출현한 영화는 ‘그녀가 모델로 활동 중인 각종 상품의 CF를 모아놓은 것 같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이렇게 더 이상의 사례를 들 필요 없이 간접광고는 TV에서, 영화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예전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적극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간접광고는 필요악?
그렇다면 ‘간접광고=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왜 끊임없이 논란이 반복되는 걸까. 아마도 근본적으로 간접광고가 매력적이라는 데 기인할 것이다. 광고주에겐 비용 대비 매출 증대 효과가 높아서 좋고, 제작진에게는 부족한 재원을 메울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특히 요즘엔 후자 부분이 주요 원인이다. 잠시 계산기를 들어 보자. 외주제작사들은 드라마를 따기 위해 A급 스타의 캐스팅에 사활을 건다. 이 과정에서 배우의 몸값이 편당 2,000만 원 가까이 뛰어올랐다. A급 PD들 역시 편당 1,000만 원 정도의 연출비를 요구한다. 그러나 제작비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그 부족분을 간접광고로 과감하게 때우는 것이다.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편당 제작비가 7,000만~1억2,000만 원인데도 방송사에서 지불하는 돈은 편당 6,000만~7,000만 원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드라마가 끝나는 장면에서 맨 먼저 이름이 나오는 ‘1바(Bar)’ 업체는 2억 원 안팎을, 두 번째 오르는 업체는 1억~1억5,000만 원의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물론 광고주 입장에서도 간접광고는 군침을 흘릴 만하다. 밤 10시대 미니시리즈의 15초짜리 광고 가격은 1,000여만 원대. 하지만 간접광고로 가면 그 절반 정도의 금액만 쓰더라도 비슷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특히 직접광고에 비해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 가능성도 훨씬 낮다는 점도 매력적인데, 그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강력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눈을 밖으로 돌려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요즘 할리우드 대작들은 제작비의 30%선, 3,000만 달러 안팎을 간접광고비로 충당할 만큼 공생관계가 깊다. 결국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가 간접광고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선악’ 논란 벗어나 양성화 논의 시작해야
간접광고가 이슈화된 요즘 들어 드라마마다 ‘뿌연 화면’이 부쩍 늘었다. 로고나 상품이름이 안 보이도록 하기 위한 처리 때문인데,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그 덧칠 정도가 심해 거북살스러울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드라마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그런데 사실 방송사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추란 말이냐’ 하면서.
사실 간접광고는 선도 악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정책’과 ‘적용’의 영역일 뿐이다. 또 그 동안 우리가 ‘강박적으로’ 간접광고를 대해 왔을 뿐이다. 이에 돌이켜보면 외주제도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은 이 문제를 쉽게 풀지 못하게 한 요인이 되어, ‘알아서’ (간접광고비를) 끌어 오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광고가 스토리를 잡아먹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간접광고를 신랄히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어느 정도의 양성화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공개적으로는 그런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자율 통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매듭은 방송 스스로 풀어야 한다. 제작비를 현실화할 부분은 현실화해야 하며, 이에 앞서 지상파 방송 3사를 중심으로 제작비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외주제작사가 작가나 연출가에게 스트레스를 줘 스토리를 무리하게 수정하도록 하는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난마처럼 얽힌 외주 관행에 손대지 않고서는 건강한 간접광고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장이 어느 정도 정상화된 이후에는 양성화를 전제로 엄격한 심의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절대 안 된다’는 식의 흑백 논리는 없애고, 대신 어느 정도까지, 어떤 장르에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 ‘적정선’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으므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의견을 좁혀가야 하겠지만,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 주체는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위가 돼야 할 텐데, 방향은 ‘규제는 풀되, 규정을 어기는 곳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하는 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긍정적 산업 효과를 올리기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한류 열풍’에서 보듯 드라마는 이미 다양한 부가가치를 낳는 문화상품으로 성장했다. 아시아 시청자들은 드라마 스토리 못지않게 그 속에 담긴 소비문화에 주목하면서, 멋진 자태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한국 자동차는 외국 소비자들에게 ‘사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지금, TV를 보며 상품을 구매하는 ‘T-커머스’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 하겠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