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2 : 광고세상 보기 - 광고 매니아 아줌마의 씁쓸 달콤한 고백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광고 매니아 아줌마의 씁쓸 달콤한 고백  
 
 광고세상 보기
 
노 향 란 | 일간스포츠 경제부 기자
ranhr@dailyrsports.co.kr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열심히 공부해두는 건데.’
원고료에 혹해(?) 기고하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해놓고 기자 노모 씨는 ‘뭘 써야 좀 폼이 날까’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 전공이 마침 관련이 좀 있어서 ‘광고학 개론’이니 하는 과목도 접하긴 했지만, 뭘 배웠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 그랬다. 조금 더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니 나이 드신 교수님의 수업에서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가 스스로 ‘수업 거부’를 했던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두툼한 하드커버 책을 사는 것도 아까워 선배에게 아양을 떨어 당시 1만원이 넘는 교과서를 물려 받았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 책은 책장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다가, 아주 잠깐 낮잠 즐기기에 사용되기도 했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노모 씨는 난감해졌다. 무슨 이론이니 하며 좀 폼을 잡아야 하는데, 도무지 어디다 대놓고 베낄 거리도 없는 것이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만지곤 하는 TV 리모컨을 눌렀다. ‘4등신’의 두 아이가 입을 헤 벌리고 손도 까딱 못한 채 앞만 쳐다보는 모습이 노모 씨 눈에 들어 왔다.


순진한 아줌마, 어떤 광고에 놀라다
노모 씨는 원래부터 ‘테순이’였다. 텔레비전에 대한 기억은 아마 1980년 출범한 프로야구와 함께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애가 공부하느라 눈이 나빠졌다”고 남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던 엄마의 믿음은 사실이 아니었다. 엄마의 감시를 잠깐 벗어날 때마다 TV를 거의 ‘끌어안고’ 지냈던 것이다. 아, 그런데 무슨 광고를 봤었는지 기억이 왜 안 나지?
그러던 그가 TV를 멀리한 것은 대학교 때다. TV를 많이 본다고 하면 왠지 창피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뉴스나 다큐멘터리, 시사프로그램만 본다고 우기고 다녔으니까. 사교활동(?)에 힘쓰느라 광고를 볼 틈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를 다시 TV 앞으로 데리고 온 건 아이들이었다. 발발 기어 다니며 온 방안을 헤집던 큰 아이는 TV 광고가 나올 때마다 ‘동작 그만’ 상태에 빠졌다. 아이는 말이 떼를 지어 등장하는 모 금융기관 광고를 볼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광고가 끝나고 본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아이는 울었다. ‘이건 아니야’라는 표정으로. 말을 할 나이가 되자 그 아이는 광고가 끝나면 “끝났어, 다른 거 틀어줘”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광고 매니아가 된 아이 때문에 노모 씨 역시 광고를 열심히 보게 됐다. 그러다 이제는 두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눈을 화면에 박은 자세를 연출하기까지 한다.
노모 씨는 요즘 광고로 ‘먹고’ 산다. 그렇다고 ‘광고인’은 아니다. 이른바 광고담당 기자가 된 것이다. 연예부도 아닌 경제부(비즈니스부) 기자가 광고에 무슨 관심을 보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노모 씨는 광고를 정말 ‘재밌게’ 보는 ‘매니아’가 아닌가. 기업이 만든 상품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팔고 싶어하는지, 그 마음이 갸륵하게도 느껴질 만큼 광고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단지 재미있기만 하면 그냥 ‘광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건 웬걸 갑자기 숙연해질 정도로 마음이 ‘짠’해질 때도 있으니, 테순이 눈에는 오밀조밀 들어선 이야깃거리들로 가득찬 광고가 도무지 내 주머니를 열려고 덤벼드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노모 씨는 얼마 전 색다른 광고 전쟁을 목도하게 됐다. 아니, 세상에! 팔고 싶은 상품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버스운전사가 나오고, 먼저 지나간 버스는 사고가 나고, 모범운전사를 뽑아야 5년이 편하다니! 그 뿐이 아니었다. 존 레논이 부른 노래와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얼굴이라니. 매일매일 바뀌는 광고는 점입가경이었다.
“이 사람을 믿지 마십시오. 제가 최고입니다. 내가 해야 나라가 편안합니다.”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사는 세상인 것이다.
 
‘가짜’이겠지만, 그래도 광고가 좋아
 
  ‘무식한’ 노모 씨가 상업광고를 만드는 광고인에게 물었다. “누가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모두들 속삭이며 말했다. “그건 말하기 곤란한데요, 하지만…” 익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술술 꺼내 놓는다. 한층 더 무식해진 노모 씨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따옴표(“ ”)안에 사람들을 가둬 놓았다.
광고를 너무 좋아하는 노모 씨는 광고 안의 이미지를 너무 잘 믿는 ‘순진녀’다. 눈물을 흘리면 그가 정말 착한 사람인 것으로 믿어버리고, 광고 속에서 모범운전사라고 하면 ‘아
그 사람은 모범생이지’라고 단정짓는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은 한 10여 초 후에나 나타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깨달음을 뒤늦게 한 노모 씨는 광고 속의 즐거운 세상에서 빠져나오기가 싫다. 왜냐? 또 속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싫어서일 테지.
광고 속의 생활은 ‘진짜’가 아닌 것같다. 가짜 냄새가 많이 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어쩌랴. 설탕을 입힌 맛있는 과자처럼 광고는 화장발, 조명발, 이미지의 당의정을 입었다.
해방 후 첫 미디어선거전이라는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광고 매니아 노모 씨는 ‘사람’들 사이의 광고전쟁을 되도록 즐겁게 구경했다. 그저 보기만 하면 되는 ‘마음 편한’ 전쟁은 아니었지만 전처럼 애타는 심정만은 아니었다. 뭐랄까. 지난 12월의 전쟁을 거친 후 우리사회가 조금은 달라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물론 지난 지방선거 투표에도 자발적으로(?) 불참했던 노모 씨가 투표소를 찾아 ‘부채감’을 덜어버렸다는 점도 한몫 했을지 모른다.
오늘도 노모 씨는 광고 속의 세상에서 헤매고 있다. 사실은 어디까지가 이쪽 세상이고 어디까지가 광고 속의 세상인지도 모르면서 사는지 모른다. 남이 보는 나의 이미지도 광고 속의 세상일지 모르니까.
하염없는 상념 속을 헤매는 노모 씨의 등을 조그만 손이 두드린다. “엄마, 나 저거 사줘.” 아이는 TV화면 속을 조그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갑자기 노모 씨는 잠이 확 깨는 것 같다. 만져지지도 않는 주사선 속의 저 물건을 어쩜 그렇게 갖고 싶도록 만들었을까. 노모 씨는 물건을 탐나게 만드는 광고 속 세상이 얄밉지만은 않다. 왜냐고? 그건 묻지 마라. 노모 씨는 광고학 교수가 아니라 그냥 광고를 좋아하는 아줌마일 뿐이니까(노모 기자의 두 아이는 이제 4살, 2살이다. 4살 아이는 TV 광고를 보면서 말을 배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제대로 봐주지도 못한 엄마를 미안하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아이에게 말을 익히게 해준 TV 광고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물론 너무 좋아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