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2 : Creator@Clipping - 화제거리를 만드는 기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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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반대편에 서서 크리에이티브를 보다  
 
 제프 굿비(Jeff Goodby)
 
이 현 종 CD | CR1그룹
hjlee@lgad.lg.co.kr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한 물 두 물 사리 한 개끼 대 개끼
소금물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 함민복,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

 
큼직한 갯지렁이들을 깡통 가득 담는 일은, 서로 농지거리를 해대며 까불어대도 한 시간이면 넉넉하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를 따라 망둥이 낚시를 나선 우리들은 밀가루 반죽 같은 뻘에서 미끼로 쓸 갯지렁이를 솎아내며 미련스러운 망둥이들을 비웃어대곤 했는데, 어떤 날은 낚시도 시작하기 전에 그야말로 이전투구라, 서로의 몸뚱이에 갯벌 진흙을 처바르며 낄낄거리다 깜둥이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허기에 지치면 할아버지의 노란 양동이에서 슬쩍 해온 망둥이 몇 마리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구워먹으면 따끈따끈한 살점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바다가 빌려준 이 검은 축복 위에서 본의 아닌 ‘체험학습’에 열중하며 갯벌 생물들의 이름을 익히기도 했는데, 따개비·바지락·민챙이·소라·고동·농게·밤게·갯가재 등등… 갯벌 속에 옹기종기 이웃하며 모여 사는 요 녀석들은 때로는 우리들의 장난감이 되었고 때로는 우리를 키워주는 영양분이 되었다. 그 뿐인가. 호미 들고 나가 한나절 캐오면 생활비가 되어주는 고마운 이웃들이었다.
짭조름한 바닷물이 세월을 들락날락하며 우려내고 절여낸 갯벌은 말캉말캉 어미의 품처럼 늘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곱디 고운 모래 해안이 그림엽서처럼 펼쳐져 있는 동해안의 세련된 정취보다 왠지 내겐 서해 뻘밭의 검은 숨결이 자궁 속처럼 편안하다. 뻘은 카오스다. 만물의 혼재요, 원초의 힘이다. 아직 비문명이고 비교육이다. 검은 살과 살을 섞으며 엎치락뒤치락, 혼돈의 에너지를 발산해내는 저 원시의 아우성들… 뻘을 밟으면 나는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문명의 때가 그렇게 비겁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알량한 형식을 광고의 섭리라 믿고, 몇 가지 잔재주를 노하우라고 떵떵거리며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 이제 단정한 질서의 노예가 되기보다 무질서의 카오스와 연애해 보자. 창조의 어머니는 진정 혼돈이거늘, 저 혼돈의 무한 자유를 배울 일이다.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하나의 별을 낳기 위해 자기 자신 속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카오스를 따를 때 훨씬 크리에이티브해지죠

크리에이티브를 펼치는 데는 규율이나 구속보다는 카오스를 따르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아마 제가 이런 성과를 낸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제 인생에서 절 컨트롤할 만큼의 구속들은 충분히 있어요. 가정·비즈니스·광고주들…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겠지만요.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을 가두는 그 철창 속에서 빠져 나와 카오스가 끌고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정말로 전 카오스를 따를 때 훨씬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제프 굿비(Jeff Goodby)<사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Goodby, Silverstein & Partners의,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크리에이티브계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제프 굿비. 번벅 이후 미국 크리에이티브사에서 ‘제2의 크리에이티브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 낸 그가 2002년 칸느 국제광고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그의 시선이 두 개의 커머셜에 머물렀다.
 
특별히 두 가지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X-box<광고 1 참조>인데, 산모의 자궁 속에서 공중으로 애가 발사되고, 애는 날아가면서 점점 늙어가다가 마침내 무덤 속으로 골인하면서 끝이 납니다. 맨 끝의 카피가 괜찮은 건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지는 아주 강력하다고 생각됩니다. 페스티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또 한가지는 사람들이 벽을 뚫고 달려가는 리바이스 커머셜<광고 2 참조>인데, 최근의 어떤 영화와 유사해 조금 난처했던 기억이 있네요. 커머셜의 전반부에, 벽을 뚫고 나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나무 부분이 저에겐 영화 <와호장룡>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어요. 하지만 맨 앞쪽에, 남자가 방으로 들어와 잠깐 생각하다 갑자기 달려가며 벽을 뚫는 장면은 가히 압권입니다.
 

공학도 출신으로 IBM 이탈리아 사장까지 하다가 직장을 버리고 철학자로 유쾌한 변신을 한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Luciano De Crescenzo)는 무질서를 찬양한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질서지만 그 꿈을 갖게 만드는 것은 무질서’라고 한 그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강단에 서는 파격을 즐긴다. 언젠가 그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질서와 무질서로 편을 갈라 정리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 티누스·베토벤·데카르트·움베르트 에코 등은 질서에, 오디세우스·체 게바라·반 고흐·엘비스 프레슬리 등은 무질서로 분리하는 식이었다. 사실 각각의 인간 속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다 어른이 될수록 질서적 인간이 되는 것이 거개의 흐름이다.
그런데 크리에이터로서의 굿비는 대단히 무질서적이지만, 경영자로서의 굿비는 다분히 질서적인 것 같다.
 
처음에 회사를 차렸을 때, 사람들과 일에 매달려 같이 돌아갔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을 평가할 수도, 일을 더 잘하게끔 할 수도, 역할을 바꿔줄 수도 없더군요. 그래서 전 풋볼팀 코치처럼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연봉을 주고, 그들이 더 많은 스코어를 올리기를 기대하는 쪽으로요. 그러자 갑자기 팀의 일원이라는 차원을 떠나게 되더군요. 제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한 일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선수로서의 한 사람 한 사람과 오픈 마인드로 얘기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상황이 훨씬 좋아지더군요. 고백하건대,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그건 또 현재까지 제가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이 되었구요. 어떤 해에는 좋은 팀을 데리고 일했고, 어떤 해에는 그저 그렇거나 안 좋은 팀들을 갖게 되었지만, 언제나 제 역할은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가장 많은 골을 넣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가 임옥상은 말한다. “작품은 술 익히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펄떡 펄떡 살아있어야 한다”고. 아마도 커뮤니케이션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얼마나 글을 잘 썼느냐보다는 다소 거칠어도 글쓴 이의 슬픔과 기쁨이, 분노와 감동이 견실하게 전달되는 쪽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든다.
요컨대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사실을 진실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정의하는 의도 속에는 바로 이 진정성의 충실한 함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스타일에 대한 도전 역시 차가운 이미지의 실험이 아니라 사람들을 뜨겁게 끌어안는 진정성에의 모험이어야 한다. 제프의 실험이 성공한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는 듯하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려고 ‘미친 짓’도 했어요
초기에 스타일에 관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는데, 한번은 샌프란시스코 내파밸리(Napa Valley)에서 열린 작은 영화제를 극장에 광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이 작은 지방이 영화에 관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고 싶었어요. 가령 푸줏간 주인에서 중국음식점의 일꾼들, 그리고 주유소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점원 등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영화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영화평론가들이 되도록 만들었지요. 우리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 역할을 맡겼는데,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을 그렇게 이용하는 건 일종의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80년대의 ‘흘러간’ 홈무비처럼 보이도록 8mm 필름을 아주 즐겨 썼는데, 물론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아마도 제일 처음은 우리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버리는 홈무비 카메라를 사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50달러에 사가지고 겨우 집으로 왔는데, 생산이 중단된 거라 맞는 필름을 구할 수가 없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웃기면서도 마치 미친놈 같은 핸드 헬드(hand-held) 필름들이 커머셜들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처음엔 이런 짓도 했어요. 일부러 비디오의 질을 떨어뜨리려고 벽에다가 그림을 쏘고 그걸 다시 비디오 카메라로 찍기도 했는데, 새로운 스타일을 위해 그런 발명까지 해냈던 때를 떠올려보면 참 재미있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전통적인 포르셰 스타일의 광고에서도 예의 Fallon Mcelligott 사가 만든 고전적인 헤드라인과 비교하면 굿비 실버스타인(Goodby Silverstein) 버전은 장난기가 넘친다<광고 3 참조>.
유명한 ‘got milk?’ 캠페인<광고 4 참조>, 그리고 개구리와 도마뱀이 등장해서 너스레를 떠는 버드와이저 캠페인<광고 5 참조>의 명성을 넘어, 압권은 역시 칸느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쥔 나이키 광
고<광고 6, 7 참조>들이다.
 
 

 
 
"스케이트보드에 관한 나이키 광고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스케이트보더들의 실제 증언에 착안했어요. 공공장소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면 경찰들한테 쫓겨나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걸 보면 마구 화를 냈거든요. 스케이트보더들은 늘 불만이었고, 이런 얘기를 우리에게 했어요.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는 거고, 이건 아주 쉽게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스포츠맨으로 인정 받아야만 한다”…… 그 때 갑자기 ‘그래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냐 하면, 소위 합법적인 스포츠들도 스케이트보드처럼 무시당하고 경찰들한테 쫓겨나고 하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골퍼들, 육상 선수들, 테니스 선수들한테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말이지요."

Posted by HSAD